칼럼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 인용될 수 있는 구체적 사례 2026-10-27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 인용될 수 있는 구체적 사례


 

 

1.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의 기준,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

민법 제816조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혼인취소의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오간 말 가운데 어떤 거짓이든 모두 취소사유가 된다면 혼인은 늘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법원은 어떤 거짓이 취소사유가 되는 사기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워 왔고, 이 글은 그 기준이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사례로 보려는 것입니다.

기준을 먼저 세운 것은 서울가정법원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혼인의 성립에 있어서는 혼인의 성립을 희망한 나머지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약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사기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통상 재산관계나 경제적 능력, 집안 내력, 직업 등에 대한 기망은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혼인 후 허위가 발견되었더라도 그러한 혼인은 이혼에 의하여 해소됨이 바람직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망이 적극적인 허위사실의 고지 등 위법한 수단에 의한 것이고 일반인도 그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혼인의 취소가 허용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는 재산이나 직업을 속였다면 당연히 취소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물론 속은 쪽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결혼의 전부였을 수 있지만, 사실 법원의 출발점은 그런 사항의 기망은 원칙적으로 이혼의 문제라는 것이고, 취소는 그 원칙의 예외로 열립니다. 그렇다면 그 예외가 인정된 사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2. 인용된 사례, 배우자의 동일성에 관한 착오에 이른 기망

바로 위 2002드단69092 판결의 사안이 그 예외였습니다. 이 사건의 피고는 혼인신고 전까지 원고에게 자신의 부모가 누구이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직책으로 일하는지, 과거의 혼인이 어떤 경위로 이루어지고 끝났는지, 집안의 재산과 유산이 어떠한지, 자신을 둘러싼 약혼과 호적의 사정이 어떠한지에 관하여 일관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피고가 법정에서 스스로 주장한 사실과도 현저하게 달랐고 피고의 전 배우자가 진술한 내용과도 크게 달랐으며, 피고가 법정에서 주장한 사실조차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자신의 직업, 가족관계, 재산관계, 혼인 전력, 집안 내력 등에 관하여 원고를 적극적으로 기망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망의 정도가 피고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의심할 정도에 이르러 '배우자의 동일성에 관한 착오'를 일으킬 정도이며, 일반인도 그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혼인을 취소하고 위자료 2,000만 원을 인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읽어야 할 것은 재산이나 직업 하나를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를 이루는 사항 전반이 꾸며져 있어 누구와 결혼한 것인지 자체가 흔들렸기 때문에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인정되었다는 점입니다. 1절의 기준이 말하는 예외는 거짓의 개수가 아니라 거짓이 혼인의 상대방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까지 닿았는가로 판단된 것입니다. 한편 이 판결은 소 제기 뒤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임을 알면서 혼인을 '추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취소권자가 소송 중에 상대방과 접촉하였다는 사정이 곧바로 취소권의 포기로 읽히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체 전체가 아니라 몇 가지 사항을 속인 경우는 어떨까요?

 

3. 인용된 사례, 학력·혼인경력·출산경력의 적극적 은폐와 그 한계

서울가정법원 2006. 8. 31. 선고 2005드합2103 판결의 사안이 그 경우입니다. 이 사건의 상대방은 교제 중에 자신의 나이와 학력과 직업 경력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하고 혼기를 놓친 미혼이라고 말하여 두 차례의 혼인과 이혼 전력 및 그 사이에 자녀를 둔 사실을 감춘 채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였습니다. 청구인은 혼인 뒤 7년쯤 지나 이혼을 준비하면서 호적을 떼어 보고 이혼 경력과 출산 경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상대방이 학력, 혼인 경력, 출산 경력 등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였고 그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청구인이 혼인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착오가 없었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제816조 제3호에 따라 혼인을 취소하고 위자료 3,000만 원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판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인용과 함께 그어진 네 가지 한계입니다. 첫째, 청구인은 혼인이 무효라고도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민법이 무효사유와 취소사유를 구별하고 있고 혼인은 무효가 되면 소급효가 인정되므로 무효와 취소를 엄격히 제한하여야 한다고 하여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청구인은 이름과 나이도 속였다고 주장하였지만, 청구인이 실제 이름은 혼인신고 무렵에, 실제 나이는 늦어도 대출 서류를 통하여 알았습니다. 소 제기는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였으므로, 제823조에 따라 이름과 나이는 취소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사건 안에서도 사유마다 3개월을 따로 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청구인은 결혼식 비용과 생활비와 사업자금 등을 재산상 손해로 청구하였지만, 제824조에 따라 혼인 취소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아 과거의 혼인생활은 그대로 유효하므로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쓴 비용은 재산상 손해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청구인은 상대방의 가족들도 기망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가족들이 함께 거짓을 말하였거나 기망의 자리에 동석하여 묵인하였거나 착오에 빠진 것을 알고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여 가족들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자료 액수를 정하면서는 속인 사항이 혼인생활에 장애가 된 사실이 없고 7년간 별다른 다툼 없이 혼인이 유지된 점을 참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용되지 않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요?

 

4. 인용되지 않는 경우, 고지의무 없는 침묵과 기간의 경과와 증거의 부족

세 가지 방향에서 벽이 있습니다. 첫째는 침묵입니다. 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 판결은 제816조 제3호의 사기에 적극적으로 허위를 고지한 경우뿐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하지 않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면서도, 불고지나 침묵은 법령, 계약, 관습 또는 조리상 사전에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비로소 위법한 기망행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은 사안에서, 그것이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일률적으로 고지의무를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출산의 경위, 자녀의 생존과 양육책임의 존부, 실제 양육이나 교류가 있었는지, 불고지가 적극적이었는지 소극적이었는지 등을 살펴 그 경력이 당사자의 명예나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는지와 사회통념상 고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범죄 피해로 인한 출산이고 자녀와의 관계가 오래 단절되어 있었다면 단순히 알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3절의 사안이 적극적으로 거짓을 말한 경우였다면, 이 판결은 말하지 않은 경우의 한계를 그은 것입니다.

둘째는 기간입니다. 제823조는 사기를 안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고, 3절에서 본 것처럼 그 기간은 속은 사항마다 따로 흐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항은 알고도 지나쳤다가 다른 사항을 뒤늦게 알고 소를 내면 먼저 안 사항은 이미 취소사유에서 빠져 있습니다. 셋째는 증거입니다. 서울가정법원 2020. 11. 27. 선고 2020르31402 판결은 혼인 무효와 예비적 취소를 함께 구한 사안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거나 사기 또는 강박으로 혼인의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속았다는 확신이 있어도, 상대방이 혼인 전에 무엇을 어떻게 말하였는지를 증명하지 못하면 취소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5. 사례에서 도출되는 청구의 설계, 증명할 것과 서둘러야 할 것

이렇게 놓고 보면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가 인용되는 길은 분명합니다. 증명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말하였거나 고지의무가 있는 사항을 침묵하였다는 것, 그 사항이 재산이나 직업 하나가 아니라 상대방이 누구인지 또는 혼인의 본질에 닿는 것이어서 일반인이라도 그 착오가 없었다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거짓이 혼인 전에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2절의 사례는 정체 전반을 꾸민 경우였고, 3절의 사례는 학력과 혼인·출산 경력을 적극적으로 속인 경우였으며, 두 사건 모두 상대방이 혼인 전에 무엇을 말하였는지가 증거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서둘러야 할 것은 기간입니다. 사기를 안 날부터 3개월은 사유마다 따로 흐르고, 그 안에 소를 제기하지 않은 사유는 취소의 근거에서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데, 취소가 되더라도 지나간 혼인생활은 유효한 것으로 남아 결혼식 비용이나 생활비는 돌려받을 수 없고, 상대방의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그들이 기망에 가담하였다는 별도의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는 속았다는 사실을 호소하는 절차가 아니라, 무엇을 속았고 그것이 혼인의 본질에 닿는지를 증명하고 3개월 안에 청구하는 절차입니다.

결혼 전에 상대방이 속인 사실을 알게 되어 혼인취소를 생각하고 계신 상황이라면,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속은 사항이 취소사유가 되는지와 무엇으로 증명할지를 변호사와 상세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