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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정폭력과 재판상 이혼, '심히 부당한 대우'의 의미와 판단 기준
배우자의 폭력이라는 문제 앞에서 법이 마련해 둔 대응 수단은 하나가 아닙니다. 폭력 그 자체에 대한 형사상 처벌의 문제가 있고,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접근금지 등 별도의 보호 절차가 있으며, 그리고 혼인관계 자체를 해소하는 재판상 이혼이 있습니다. 앞의 둘이 폭력이라는 행위를 겨냥하는 것이라면 마지막 하나는 혼인이라는 관계를 겨냥하는 것인데,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지막 갈래입니다.
재판상 이혼은 협의이혼과 성격을 달리합니다. 협의이혼이 쌍방의 의사 합치만으로 성립하여 그 사유를 묻지 않는 것과 달리, 재판상 이혼은 일방이 원하지 않는 이혼을 법원의 판결로 강제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법률이 정한 사유가 있어야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법 제840조는 그 사유를 여섯 가지로 법정하여 두고 있는데, 제1호부터 제5호까지는 부정행위나 악의의 유기와 같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유이고 제6호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는 포괄적 사유이므로, 개별 사유와 포괄 사유가 층을 이루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가정폭력은 이 지도의 어디에 놓여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제840조의 문언 어디에도 폭력이나 가정폭력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정폭력이 자리하는 곳은 제3호, 즉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입니다. 문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배우자 본인의 폭력뿐만 아니라 시부모나 장인·장모와 같은 배우자 직계존속의 부당한 대우도 여기에 포함되고, 반대로 나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는 제4호가 따로 규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미 하나의 시사점이 나옵니다. 조문의 문언상 폭력이란 심히 부당한 대우에 해당할 수 있는 하나의 유형일 뿐이므로,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이혼사유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폭력이 있어야 심히 부당한 대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별도의 판단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히 부당한 대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법원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840조 제3호에서 정한 이혼사유인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라 함은 혼인관계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을 받았을 경우를 말한다."
—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므14763 판결
이 정의에서 두 가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행위의 폭입니다. 판시는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이라고 하여 행위의 유형을 신체적 폭력에 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없더라도 지속적인 학대나 모욕과 같은 정신적 가해 역시 제3호의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신체적 폭력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조문과 판례의 문언은 그보다 넓습니다.
둘째는 정도의 요건입니다. 판시가 세워둔 기준은 혼인관계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인데, 이는 부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다툼과 갈등이 곧바로 제3호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심히'라는 문언 자체가 정도의 평가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결국 개별 사안에서 행위의 태양과 반복성, 그로 인한 피해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놓고 혼인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한지를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폭력을 겪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그러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재판상 이혼이 법정 사유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거치는 절차인 이상, 법원이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갖추는 것과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의 일시와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진단서, 형사절차의 결과와 같은 자료들이 결국 '심히'라는 평가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위 판결에는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법원이 문제된 폭력에 대하여 제3호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3호 '또는' 제6호의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하여 두 사유를 나란히 인정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두 사유가 서로 다른 것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제3호가 부당한 대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평가라면, 제6호는 혼인관계라는 상태에 대한 평가입니다. 대법원은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로 새기고 있는데, 반복된 폭력은 행위로서 제3호에 해당하는 동시에 혼인의 바탕이 되어야 할 애정과 신뢰를 무너뜨려 제6호의 파탄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사실이 두 개의 사유에 동시에 걸치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유는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므로, 청구를 구성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주장할 수 있습니다. 행위의 정도에 관한 다툼에서 제3호의 인정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대비한다는 점에서도, 폭력 이후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무너져 있다는 점을 함께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두 사유를 나란히 세우는 편이 구조상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책임의 경중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제6호의 파탄이 인정되는 사안에서는 책임의 비교라는 별도의 관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까지는 비교적 순탄해 보입니다. 그런데 위 판결의 진짜 의미는 사건의 경과에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반복된 폭행과 상해, 흉기를 동원한 위협까지 있었고 그 일부에 대해서는 형사판결까지 확정되어 있었음에도, 원심은 원고에게 폭력 행사를 '유발'한 책임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혼 청구를 배척하였습니다. 폭력의 존재가 명백한 사안에서도 이혼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인데,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법리오해라 하여 파기하였습니다.
파기의 근거가 된 법리는 이렇습니다.
"부부의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된다면 그 파탄의 원인에 대한 원고의 책임이 피고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이혼 청구를 인용해야 한다."
— 위 판결
풀어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다툼의 발단에 원고 측의 사정이 있었다는 점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설령 파탄의 원인에 원고의 책임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이 폭력을 행사한 피고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고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혼 청구를 배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으로서는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항변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위 판시의 구조상 그 항변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책임의 경중 비교까지이지 폭력의 정당화까지가 아닌 셈입니다.
결국 가정폭력을 이유로 한 재판상 이혼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폭력의 존재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이 '심히 부당한 대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평가와 책임의 경중에 대한 비교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을 결심하셨다면 감정적 대응에 앞서 폭력의 일시·경위·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정리하고, 형사절차나 보호 절차를 거쳤다면 그 기록까지 갖추어 두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변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이혼소송과는 별도로 보호 절차를 먼저 검토하셔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을 고민하고 계신 상황이라면, 소송에 앞서 변호사와 상세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